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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동해신묘의 정체성과 복원에 대한 학술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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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남공철(南公轍)의 <양양동해신묘중수기사비(襄陽東海神廟重修紀事碑)>

     

    江原道觀察使南公轍 撰 海與王公同位望沈之祭報其德也 易說卦曰潤萬物者莫盛於水水之爲言演也 故其立字兩人交一以 中出者爲水一者數之始兩人譬男女言蔭陽交物以一起也 周制四坎驚蟄因郊而祭立夏因迎氣而祭白露 因雩而祭大寒因蜡而祭歲凡四祭玉兩珪有邸五寸牲用少牢幣視方色王及尸皆服毳冕樂奏蕤賓歌函鐘 舞大夏用五獻盎齊是朝踐之獻也 淸酒是饋食之獻也 後世又加王爵東海曰廣德王西海曰廣潤王南海 曰廣利王北海曰廣澤王禮諸候得祀方內嶽瀆我國亦有東海神廟在襄陽府治東十里 聖上二十四年御史 權晙言臣行郡縣見東海神廟齋舍牆垣多頹廢宜修治民家之入居近廟者一並撤去毋使雞犬相聞孰嚴於 嶽瀆之祀而四方之以水旱疾苦祈禱者聚焉 甚非所以致崇極之道請著爲式以禁 敎曰可 命觀察使主其 事臣公轍適按關東謹依禮部知委擧行事訖驛 聞香祝自京師至以晙差獻官而祀之噫疾痛必呼人之情也 民之視海神如父母不獲者祈禱焉固宜然祀有其常祀彼愚夫愚婦之執金帛而來者將以求媚于神而徼福 禮滋益漫則屑孰甚焉 朝廷之禁之乃尊神之至而導民於正也一擧而兩得矣 遂述其事刻石俾解其感至 於廟宇之隨時修補者有有司存 銘曰 有宮奕奕有牆翼翼籩豆靜嘉維珪及帛於粲灑掃肆筵說几神具醉飽神旣安止御史自東歸奏于王嶽瀆有祀曰沈曰望蚩蚩者氓凡有攸求握粟擲錢久爲神羞禮滋益慢神顧 不歆 王命方伯其始自今敕其府吏秖存常祀迺宣祝冊迺御史丕顯我 王以禮事神導率之正爰及衆民民 皆稽首神宜酬惠酬之維何惠玆東裔衆有魚矣 多黍多稻旣富而庶黃髮壽考維萬億年海晏河淸維萬有衆 偕我太平 崇禎紀元後庚申閏四月 日立

     

    <양양동해신묘중수기사비>

    강원도관찰사 남공철 지음

     

     

    바다를 왕으로 더불어 위를 같이하여 망침제사를 지냄은 그 덕을 보답하는 것이다. 주역의 설괘에 말하되 만물을 윤택하게 하는 것은 물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물이라 함은 넓은 것이라.

    그러므로 그 집을 세움은 두 사람이 하나로 사귀어 가운데 나오는 것이 물이 되니 하나라 함은 밝힘의 시작이요. 두 사람은 남녀를 비유하니 음과 양이 사물과 교류하면 하나로 일어남이라.

    옛날 주나라 법제에는 네 차례로 경칩에 제사하고 입하에 기운을 맞이하여 제사하고 백로에 기우제로 인하여 제사하고 대한에 납향으로 인하여 제사지내니 한 해에 네 번이라. 왕이 두 홀로 홑바탕 다섯 치를 두고 짐승은 작은 소나 양을 쓰고 폐백은 오방색을 보이고, 왕과 주관하는 사람은 다 연하고 부드러운 세 깃털을 꽂은 면류관을 쓰며, 풍류는 유빈을 연주하고 노래는 함종으로, 춤은 대하로 추고 다섯 번 그릇을 가지런히 함은 이 조정에서 하는 것처럼 드리는 것이고 맑은 술은 이 음식을 드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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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해신묘지 이정표와 주변 소나무 숲

     

     

    후세에 또 왕의 작위를 더하여 동해를 말하되 광덕왕, 서해는 광윤왕, 남해는 광리왕, 북해는 광택왕이니 제후로 예우하여 제사를 산과 내 안에서 제사했다고 하며 우리나라도 또한 동해신묘가 있으니, “신이 군과 현에 다니며 동해신묘를 보니 재사의 담장이 많이 퇴폐하고 사당 가까이 민가가 들어와 사는 것을 마땅히 한결같이 다스려서 아울러 철거하여 닭과 개소리가 서로 들리지 않게 하고, 산천의 제사에 엄숙하고 공경하여야 사방의 홍수와 가뭄과 병들어 기도하는 사람들을 모으게 할 것입니다. 심히 숭상함을 극진히 하는 가르침으로 형식을 삼으려는 것을 금하는 것이 아닙니다.”하니 하교하여 말씀 하시되 “옳다”고 하시고, 관찰사를 명하여 그 일을 맡게 하였노라. 신 공철이 관동지방에 가서 보니 삼가 예부에서 위임하여 행사를 거행한다는 말을 역사에서 들으니 향과 축이 서울로부터 이르러 준[권준(權晙)]으로 하여금 헌관으로 차출 하여 제사했다고 하니 슬픕니다. 병들어 아픔에 반드시 부름은 사람의 정이라, 백성이 해신 보기를 부모와 같이 하여 기도하여 마땅히 섬기는 것입니다. 항상 섬길 수 있으면 저 어리석은 지아비와 지어미, 돈과 비단을 가지고 오는 자가 장차 신에게 은혜를 구하고 복을 맞이하는데 예가 많아 심히 넘친 충이 있어 잡음이 심합니다. 조정에서 이것을 금함은 신을 지극히 높힘이고 백성을 올바르게 인도함이니 하나를 들어 두 가지를 얻는 것입니다. 드디어 그 일을 기록하여 돌비석에 새겨서 그 감회를 풀고 사당을 보수하는 것에 유사를 두었습니다. 이에 글을 새겨서 이르노라.(여기까지는 장정룡, 「동해신묘의 문화사적 고찰」의 글에서 취하였다. 이하는 『양군지』(2010)에서 취하였다.)

     

     

    사당은 크고 아름답고 담장은 곱게 꾸며졌네.

    제기는 깨끗하고 아름답고 규홀은 비단 같은 옥이로다.

    먼지 씻어내어 환하게 되었으니 드디어 자리에 안석을 설치했네.

    신께선 흐믓하게 드시고 신께선 이미 편안하시네.

    어사는 동해를 순시하고 임금께 돌아와 아뢰었네.

    산과 강에서 제사하니 소망대로 조용하네.

     

    어리석은 백성들 넉넉하게 구하네.

    버린 돈과 곡식을 거두고 오랜 세월 신에게 드리네.

    예가 지나치게 불어 넘치면 신은 돌보고 흠향하지 않네.

    국왕이 방백에게 명하여 지금부터 일을 시작했네.

    칙서를 부사에게 내리니 크게 상사를 이어가네.

    이에 축첩을 알리고 이에 어사에 명했네.

     

    국왕이 크게 밝히니 예로서 신을 섬기네.

    이끌고 거느림이 바르니 이로써 백성에게 미치네.

    백성 모두 큰 절 올리니 신은 응당 은혜 베푸네.

     

    무엇으로 보답 하오리까 우리들 백성의 은혜로다.

    물고기 무리지고 곡식이 넉넉하네.

    넉넉하고 풍성하니 늙은이들 장수하네.

    오로지 억만년 이어서 바다와 물이 청안하네.

    수많은 백성들은 모두가 태평하리.

     

    정조24년(1800년) 윤 4월 일 세움

    (2010년 4월 12일 又泉 李鍾㝢 삼가 번역하다.) 

    『양양군지』, 양양군지편찬위원회, 2010, 15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