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국사] 성보문화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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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미타 삼존불(阿彌陀 三尊佛)
성국사에는 특이하게도 인법당 우측 산밑에 시멘트 단(壇)이 있는데 단(壇)위에는 당우(堂宇) 없이 삼존불이 경내(境內) 에 봉안되어 있다.
이 터는 원래 금당지(金堂址)였다고 하는데 아미타(阿彌陀) 부처님을 본 좌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이 좌우에 협시(脇侍)보살로 모셔져 있다. 삼존불은 인법당이 세워지기 전부터 이 터를 지켰으며 삼존불을 인연으로 인법당을 세우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고려시대로 주청되는 탑
인법당 우측 산밑의 아미타 삼존불
● 오색석사복원기념(五色石寺復元記念) 학루당황운영공덕비(鶴樓堂黃雲永功德碑)
3층 석탑 남쪽에는 오색석사의 역사성과 가치를 인식하고 1972년 이 절에 임(任)하시어 1974년부터 터를 닦고 길을 내는 등 복원(復元)을 서두르다가 금당 건립의 뜻만 세우고 1999년에 열반(涅槃)한 학루당 황운영 주지 스님의 공덕비(功德碑)가 세워져 있다. 당시 폐허가 된 이 절을 복원하기 위하여 스님께서는 서울 평창동에 있는 각진(覺眞) 선원(장영자 개인 사찰을 ‘94년 조계종 총무원이 인수 후 비구니 도량으로 활용)의 주지를 겸직하면서 주지 월급으로 조금씩 복원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스님 당시는 조계종(曹溪宗) 소속 사찰이었으나 1998년 송월주 스님의 총무원장 삼선 출마를 두고 조계종 갈등과 폭력에 환멸을 느껴서 조계종을 탈퇴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지명(智明) 스님이 절을 운영하면서 대한불교관음종(大韓佛敎觀音宗) 종단의 사찰이 되었다.
● 6·25 한국전쟁 이후 사찰의 변화
이 절터 연유는 알 수 없으나 6.25 한국전쟁 후 정연옥 할머니(보살계를 받지 않음, 양양 남문리 355-1번지 거주)의 개인 암자(사유재산)였던 것을 1987년 7월 1일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창립되면서 문화재청의 재산이 되었다고 한다.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공단 설립 당시 관보로 사유재산 신고 기간을 주었다고 하는데 관보를 접하지 못한 사찰에서 이를 이행하지 못했다는 사유로 국유화되었다고 한다. 특히, 우리 지역이 수복지역이었기 때문에도 문제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문화재청에 국유재산 임대료를 매년 납부하고 있다고 한다.
학루당 스님은 정연옥(鄭然玉) 할머니와 생면부지(生面不知)였으나 만행(卍行)을 하다 잠시 들린 것이 인연이 되어서 이 사찰을 복원 정진하게 되었다고 한다.
스님께서 열반 후 학루당 스님의 누이 아들인 지명(智明) 스님께서 대한불교관음종(大韓佛敎觀音宗)으로 개종 후 주지 소임을 맡고 있다. 스님은 학루당의 유지를 받아 스님 본분에 충실하고 검소하게 사찰을 관리하고 있다.
학루당스님 공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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