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혈사] 성보문화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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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도전
영혈사 주차장에서 200여 미터 직전 임도 옆 약간 높은 산모퉁이 위에 위치한다. 3기의 부도와 1기의 탑비가 있는데 부도는 석종형과 8각원당형으로 화강암이며 모두 조선 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부도 ① 은 자연암반(自然巖盤) 지대석(地臺石)은 본래 부재가 아니다. 하대석은 결실(缺失)로 중대석과 상대석이 일석이며 원구형 탑신에는 당호가 있으나 식별이 되지 않는다. 거의 직각의 옥개석과 상륜의 보주를 크게 조성하여 비례가 맞지 않는다. 부도 ② 는 자연 암반을 지대석으로 삼고 팔각 대좌 위에 원구형 탑신을 올렸다. 옥개석과 보주는 후보물(後補物)이다.
부도 ③ 의 지대석도 자연 암반으로 대좌는 망실(亡失)된 듯하다. 길쭉한 조형 탑신 위에 두텁게 조성한 복련(複蓮)은 입이 들려 있다. 탑신과 일석인 보주는 탑신에 비해 크기가 작다.
이 3기의 부도는 지대석으로 삼은 암반이 본래의 것인지 불분명하여 본래 위치 여부도 확실하지 않다. 부도비는 1760년에 조성된 것으로 영암당묘잠선사의 비(碑)다. 부도(浮屠)없이 부도비만 남아있다. 영조 재위 시 결혼한 이후 스님이 된 사례를 보여주는 귀중한 부도비다.
영혈사 부도(우측부터 ①, ②, ③번 부도이다.)
영암당묘잠선사비
● 아미타불도(2019년 11월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80호로 지정)
설법인을 하고 있는 중앙의 아미타불의 대좌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서 있는 전형적인 아미타불도로 원통전에 봉안되어있다. 아미타불의 광배 좌우에는 가섭과 아난 그리고 화면의 양 끝에는 사천왕상이 배치되어 있다. 화면 하단 오른쪽 끝에는 붉은색 구획을 마련하고 그림의 제작 시기, 봉안처, 작가 등을 적은 화기(畵記)가 있다. 화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道光元年辛巳五月 日襄陽府靈穴寺 奉安于 緣化秩 證卵龍波慧椘 □□道峯 富兼 金魚漢菴義銀 聖波盛演 比丘大益 比丘体信 比丘□仁 別座比丘□根 供養比丘块植 淨稱立禪陳旺 持殿緣化主南漢世能 三網 僧□比丘世沾 首僧比丘 熳□ 畵僧比丘世熳 本寺秩 老□比丘洪鑑 比丘巨密 比丘大仁 比丘信椛 比丘最玄 比丘壁信 比丘贊熙 大施主秩 大施主靈發及 婆□主陳允恒 화기에‘도광원년신사(道光元年辛巳)’라는 간기가 있어 이 불화는 금어(金魚) 한암의은(漢菴義銀), 성파성연(聖波盛演), 비구대익(比丘大益), 비구체신(比丘体信) 등이 1821년 영혈사에서 조성하여 봉안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아미타불도는 원통보전에 모셔져 있었으나 지금은 낙산사로 옮겨 봉안된 건칠관음보살좌상의 후불탱으로 조성된 것이다. 2015년 3월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66호로 지정되었다가 2019년 11월 강원도의 유형문화재 제180호로 지정되었다.
19세기 아미타불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불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가 있다는 점에서 보존 가치가 크다.
1821년 조성된 원통전 아미타불도
영혈사 호국범종각
● 범종각(梵鐘閣)
현판에 호국범종각(護國梵鐘閣)이라 새겨져 있다. 영혈사를 호국사찰이라 부르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범종에 새겨진‘호국대범종(護國大梵鐘) 佛紀 2548년(2004) 갑신년 조성’을 통해 제작 시기를 엿볼 수 있는데 당시 범종 제작을위해 시주한 불자들의 명단이 범종 표면에 새겨져 있다. 종각 안에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版)과 함께 모셔져 있다.
● 요사채
요사채는 음식을 준비하고 스님들이 기거하거나 식사를 하시는 곳이다. 요사채 앞에는 해우소와 장독과 불사용(佛事用) 기와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고 영혈사(灵穴寺) 현액(懸額)이 이 요사채에 걸려 있다.
영혈사 요사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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