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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시기 양양군의 군정 통치에 대한 고찰

    7. 미군 급수차가 물을 뽑아가도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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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7. 미군 급수차가 물을 뽑아가도


    최용회 (남, 76세, 양양읍 조산리)

    면담일 : 2015.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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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집마다 굴을 파 놓고 이부자리도 갔다가 놓고 굴속에서 살았다 .

    내가 12 살이 되던 해인 1950 년 6 월 25 일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

    얼마 후 인민군이 대구까지 점령했을 때는 곧 통일이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하자 인민군이 후퇴를 하는데 그때 누나는 19 세 , 형은 16 세였는데 미군이 처 들어오면 여자들을 모두 겁탈한다고 소문이 나서 아버지는 누나와 형을 평양 공장으로 보냈는데 그것이 영영 이산가족이 되었다 . 어느 때는 인민군이 패전하여 들어가는데 1 개 소대에 총을 가진 군인은 반도 안 되었고 , 양양에서는 치안대와 인민군이 전쟁을 하고 있었다 .
    1 · 4 후퇴 시 국군이 후퇴하니 분위기 상 피난을 안갈 수 없었다 . 피난가면서 쌀을 집 주위에 땅속에 묻고 갔는데 군인들이 쌀을 찾으려고 집 주위를 꼬챙이로 찔러 찾으려고 했으며 , 더러는 찾아 가져갔다 . 피난을 가기는 갔는데 너무 불편하고 먹을 게 없어 집이 그리워 험한 산길을 돌아 집에 왔다 .

    전쟁을 하더라도 조상이 잘 돌봐 주리라는 믿음으로 집에 온 것이다 . 얼마 후마을로 들어오니 , 초가집은 다 타 없어지자 집집마다 굴을 파 놓고 이부자리도 갔다가 놓고 굴속에서 살았다 .


    - 미군부대 급수차가 물을 뽑아가도 우물이 마르지 않아 신기했다 .

    철조망을 치고 미군과 한국군이 주둔했는데 하우스 보이로 취직하여 미군부 대에 출퇴근 하는 청년들이 많았는데 거기는 먹을게 지천이었다 . 아이들은 미군들을 향해“헬로 초코레트 기부 미”하면 그들은 C 레이션 [ 음식이 든 통조림캔 ] 과 빵과 과자 등을 주는데 , 어떤 때는 C 레이션 을 1 통을 던져 줄때가 있다 . 그러면 횡재하는 날이다 . PX 에 근무하는 사람은 자동차도 싼 값에 사서 엔진으로 정미소도 하고 다른 물건들도 많이 가지고 와서 싸게 팔았다 .

    조산 사람이 아닌 다른 지방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가게도 생기고 술집도 많이 생겨났는데 미군이 드나드는 술집과 한국군이 드나드는 술집이 따로 있었다 .

    술집에는 아가씨들도 많았다 . 이발소 , 자동차 정비소 , 빵집 등 번화했으며 , 조산에 큰 우물이 있었는데 미군 급수차가 물을 연신 뽑아가도 마르지 않은 것이 그 당시에는 신기하기만 했었다 . 조산에서 국군 사단이 여럿 창설되었는데 이승만 대통령도 방문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