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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시기 양양군의 군정 통치에 대한 고찰

    9. 치안대 훈련소 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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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치안대 훈련소 조교


    이교영 (남, 88세, 서면 범부리)

    면담일 : 2015.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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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안대에 들어가 치안대 훈련소 조교가 되었다 .
    1950 년 당시 나는 전기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 전기가 송전로를 타고 오면 각 가정에 전기를 보내고 고장이 나면 나가서 고치는 역할을 했다 . 회사는 성내리에 있었고 전쟁이 나도 회사일은 변함없이 하였다 .


    1950 년 10 월 국군이 들어오자 나하고 친하게 지내던 함경도 사람인 선일여관 사위인 진택용이 치안대를 조직한다고 오라고 했다 . 치안대장은 경찰출신인 김민하가 맡고 진택용은 부대장 겸 경무 주임을 맡았다 . 양양본대는 약 80 명 정도 대원이 모였고 각 면별로 치안대가 조직되었다 . 나는 치안대 훈련소 조교가 되어 활동하였는데 훈련소는 손양 하왕도리에 있었다 . 교관은 박준형이 맡았는데 북한에서 대학을 졸업하였다고 했다 . 훈련대원들은 하왕도리 옛날 지서 앞 맞은편 산 밑 점쟁이집 [6 · 25 전쟁 중 소실되지 않음 ] 에서 숙식을 하며 주로 손양 학교마당과 산악지대에서 훈련을 가르쳤다 .


    1 · 4 후퇴 시 겨울을 나고 3 월 국군이 북진하자 양양으로 돌아와 다시 치안대를 조직하였다 . 처음엔 무료로 봉사하다가 나중에 생활비 정도만 받았다 . 치안대 조직은 경찰조직과 비슷하게 운영되었는데 사찰주임은 최갑집 , 보안주임은 최성호 , 경비주임은 김창건 , 총무주임은 ○○○ , 수사주임은 ○○○이었다 .


    1954 년 민정 이양 되면서 일부는 시험을 봐서 경찰이 되고 일부는 민간인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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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양치안대 손양지대 일동 4286(1953)년.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