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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시기 양양군의 군정 통치에 대한 고찰

    13. 군함에서 고철을 뜯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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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군함에서 고철을 뜯어


    홍성하 (남, 83세, 손양면 동호리)

    면담일 : 2015.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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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 년 된 된장 맛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
    1950 년 6 월 25 일 우리가 모내기를 하는데 동네 인민위원장이 논에 찾아와 밀양고개에서 탱크가 처박혔는데 인부를 내라고 해서 모내기를 하다가 말고 5 명이 가서 탱크를 꺼내주고 오다가 보니 마차에 대포도 끌고 가고 인민군이 새까맣게 총을 메고 나가는 것을 보았다 .

    얼마 후 군 내무서에서 인민군에 나가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이튼 날 연창 정거장에 가니 약 200 명 정도가 모여 기차를 타고 안변에 내려 학교 운동장에서 강원 내무성 1 대대로 편성되어 낮에는 숲에서 자고 밤에는 이동하면서 식사는 민가에 가서 식사를 제공 받았는데 마을 인민위원회에 연락을 하면 그 마을에서 쌀 , 옥수수 , 보리쌀이 섞인 밥을 주었다 . 그 때 먹었던 10 년 된 된장이라고 하여 먹었는데 그 맛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

    양구에 돌아오니 방송에 인천상륙작전이 있어 원산으로 집결하라는 명령이 내려와서 후퇴를 위하여 이동을 할 때 부대가 숲으로 들어가 수면에 들어가자 친구와 둘이서 도망을 쳐 의용군생활을 벗어나게 되었다 . 그 후 1 · 4 후퇴로 피난을 나갔다가 묵호 부둣가에서 일을 하고 고향에 들어왔다 .


    - 좌초된 군함에서 고철을 뜯어 팔고 , 명태를 잡아 곡식과 바꾸었다 .

    동호리 앞바다에 군함이 좌초되어 있었는데 , 1951 년도에 어뢰에 맞아 좌초되 었다고 한다 . 이 군함이 어뢰에 맞아 침몰할 때 전사자 4 명 , 부상 4 명이었다고 한다 . 그 당시 다리를 걷으면 그 군함에 들어갈 수 있었다 . 지키는 사람도 없어 동네 사람들이 신주 , 구리 등을 뜯어다 고물로 팔았다 . 빨리 들어가 뜯어온 사람은 좋은 물건을 많이 가져다 팔아 돈 벌어 땅도 샀다고 했다 . 20 세부터 어부 생활로 풍을 달고 배를 타고나가서 명태 , 멸치 , 오징어를 잡았다 . 배는 인구 사람이 와서 나무를 베어다 배를 만들었다 . 명태가 주로 많이 잡혔는데 선주는 1 몫 , 어부도 1 몫으로 7 명이 나누었다 . 1 사람이 5 두름씩 지고 농촌으로 다니며 1 두름에 쌀을 2~3 되씩 그리고 다른 곡식과 바꾸기도 하였다 . 동호리는 항구 시설이

    제대로 안 되어있어 파도가 치면 배를 댈 수가 없어 기사문리 , 속초에 가서 배를 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