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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2009 양양의 6·25 비화

    피난은 바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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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피난은 바다로

    수복이 되어 고향집으로 돌아 온 것은 좋았지만 군인들이 북진을하고 난 다음, 인민군 패잔병들이 그 뒤에서 북진하고 있었다. 군인들이 북진하는 과정에 인민군 패잔병들을 모두 소탕하지 않은 채 북진했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그런데 인민군 패잔병들이 북진을 하면서 처음에 내려올 때와는 달리 주민들을 못 살게 구는 것이었다. 음식을 달라 하고 집에서 잠도자겠다 하는데, 이는 인도적인 관점에서 도와줄 수는 있지만, 그렇지만 길 안내를 해달라, 등짐을 지고 가자 하면서 같이 끌고 가는 것은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주민들은 피난을 갈 수밖에 없었는데, 남에서는 인민군 패잔병들이 밀고 올라오니 할 수 없이 이북으로 피난을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장현수의 가족이나 바닷가의 주민들은 육지가 아닌 바다로 나가 피난을 하는 방법을 택했다.

    장현수의 아버지는 돛배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인민군 패잔병들이 올라온다는 말을 듣고는 곧바로 음식을 돛배에 싣고 바다로 나갔다.

    바다에서 하루, 이틀 있다가 들어왔는데, 며칠 후 또 인민군 패잔병들이 올라온다는 말을 듣고는 이번엔 아예 삼척 정라진으로 돛배를 몰았다. 장현수의 가족은 남쪽으로 피신을 했지만, 주민들 중 고성군 통천으로 피난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아군이 원산까지 가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