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시문

동유소기(東遊小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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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3회 작성일 2024-02-13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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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유소기(東遊小記)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보문암(普門菴)은 설악산 동쪽 면에 있다. 양양(襄陽)에서 설악산(雪嶽山)을 올라가면 암자는 5분의 4 지점에 높게 자리하고 있다. 남쪽은 설악산의 많은 봉우리들을 마주하고 있는데, 기세가 다투듯 솟아 있어 각각 우뚝 솟고 늠름하여 감히 범할 수 없는 빛을 띠고 있다. 암자 앞 가까운 곳에 향로대가 있는데 기이한 바위가 층층이 쌓여 있다. 그 위에 앉으니 손가락으로 여러 봉우리들을 점을 찍을 수 있어 사람으로 하여금 절규하게 한다. 

 많은 오묘한 경치를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형세는 정양사(正陽寺)나 봉정암(鳳頂庵)과 더불어 대략 비슷하다.만약 창칼을 그린 그림과 같이 마음을 놀래고 넋을 빠지게 할 만한 것을 논한다면 저들이 도리어 못 한다.

 내산의 오세암(五歲庵)으로부터 고개를 넘어 보문암 6-7리쯤 못 미쳐 고갯마루에 앉아 동쪽으로 내려다보니, 다만 묶어놓은 만 개의 칼끝과 모아놓은 창가지 천개가 우뚝하게 위로 뻗어 힘차게 나는 듯한 것만 보인다. 얼핏 보면 놀라서 허둥거리게 되지만 끝내는 즐거워하고 기뻐하니, 곧 아침에 본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정취를 갖게 된다. 

 일찍이 천하의 기이한 경관을 살펴보았는데 오직 황산(黃山)을 그린 그림이 이것과 비슷하였다. 혹 황산의 맑고 수려하며 무성하면서도 시원한 것이 이곳보다 나은지 모르겠지만, 보문암은 동쪽으로 큰 바다에 접해 있어 일출을 볼 수 있으며 아래에는 만 길 되는 수렴동과 폭포가 있으니 빼어난 경관을 다 갖추고 있는 점에서 황산은 보문암에 까마득히 미치지 못한다.

 식당(食堂)의 천석(泉石)은 보문암 하류 십리 지점에 있는데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샘이 시원하고 깨끗하여 골짜기는 넓게 탁 트여있다. 붉은 언덕과 푸른 고개 사이에 끼어 있어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었다. 설악의 먼 봉우리들이 구름과 안개 사이에서 은은하게 층층이 나타나는 것을 앉아서 감상할 수 있다. 

 만약 여러 산의 천석을 전부 비교하여 품등을 정하자면 이곳이 최고 등급이 됨에 거리낌이 없다. 비록 곡연의 십이폭과 지리곡(支離谷)의 구연(九淵)은 조화가 비록 교묘하지만 한가로이 노닐면서 은거하기에는 맞지 않으니 마땅히 따로 논해야 한다. 

 오직 폐문암(閉門巖), 수렴동(水簾洞)은 높고 낮음을 비교해 볼 만하지만 오히려 지나치게 어둡고 그윽하기에 꺼려지며, 골짜기 입구에 아름다운 경치가 두세 곳 있지만 앉아 쉬기에는 적합하지 않고 돌무늬도 맑고 윤기나지 않아서 부끄러운 얼굴빛이 없을 수 없다. 이 밖에 만폭(萬瀑)의 벽하담(碧霞谭), 송면(松面)의 천유동(僊逰洞), 화양(華陽)의 파곶동(葩串洞), 상주(尙州)의 병천애(瓶泉崖), 희양(曦陽)의 백운대(白雲臺)는 모두 흠 없이 지극히 아름답지는 못하다.

 벽하담은 격렬하게 쏟아져 내리는 상쾌함은 있지만 땅이 너무 좁고 선유동은 그윽하고 깊은 풍치는 있으나 바람소리가 부족하다. 파관은 너럭바위는 으뜸이지만 너무 넓기만 하며, 병천은 영롱한 소리가 교묘하지만 경치는 전혀 볼만한 것이 없다. 비록 백운대는 위로 푸른 봉우리를 이고 아래에 하얀 돌들이 펼쳐져 조금은 내려다보고 올려다 볼 만하지만 오히려 빽빽하게 늘어서고 머물렀다 쏟아지는 운치를 갖추지는 못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뜻을 쉽게 다하게 하니 식당과 더불어 같이 논할 수 있겠는가. 

 이 밖의 잗단 것들은 더불어 비교하기에는 부족하다. 비록 한두 곳 아직 보지 못한 것 중에 간혹 이름난 곳이 있지만 보고들은 것들을 서로 참조하면 대개 걸출한 것이 없으니, 우리나라의 천석의 경관은 대게 여기서 그친다.

 토왕성폭포는 식당에서 십여 리 쯤에 있는데 커다란 절벽이 구름 속으로 들어간다. 폭포물은 가운데가 쪼개어져 흘러내리다가 절벽이 넓게 펼쳐진 곳으로 오면 물이 구비지지 않는다. 그 형세가 매우 웅장하므로 따질 것도 없이 가장 훌륭한 경치이다. 한계폭포는 유명하기가 거의 개선과 자웅을 다툴 만하다. 만약 그 높이를 논한다면 수천 길일 뿐만 아니라 ‘해풍강월’(海風江月)이란 시구는 이 폭포에 해당할 것이니, 동쪽 푸른 바다까지 20리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가 내리기를 비는 의식을 치를 때 그 정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이 있는데, 수원이 자못 풍부하고 커서 가물어도 물이 끊긴 적이 없이 때문이다. 이전에 왕래했던 사람들은 단지 길 위에서 범범하게 보고 한번 웅장하다고 말하였으나 천양한 적은 없었다. 나는 오랫동안 지팡이를 멈추고 자세히 보니 폭포의 북쪽가 땅에 구릉이 하나 있는데 잡고 올라갈 만하였다. 만약 그 꼭대기에 누대를 하나 짓는다면 영동 제일의 장쾌한 경관이 될 것이다. 

 청학동 위 아래로 10여리는 고요하고 그윽하여 특히 얕고 야하지 않다. 대개 여러 가파른 절벽이 뾰족하게 솟아 있고 못의 물은 먹이 가라앉은 것 같아 마치 커다란 항아리에 담아 놓은 검은 염료가 솟구쳐 층층이 여울을 만드는데 혹은 수백보 이어지기도 하며, 사이에 펼쳐져 느슨하게 구비치는 곳이 있으면 자못 목을 축일만 하였다. 아쉬운 것은 물이 맑지 못하여 돌들이 모두 검고 어둡다는 것이다. 관음천 위로는 시내를 끼고 둥그런 봉우리와 가파른 절벽이 있는데 올라가 조망할 곳이 몇 군데 있다. 석담기에서 이른바 석문을 찾는 것이 아득하구나 라는 기록과 같았다. 

 식당암은 넓어 백 사람의 밥상을 늘여놓을 만한데 바위 색깔이 거스르게 검고 형세가 기울어져 있으다. 경담도 또한 둥그렇지 못하니 양양의 식당과 비교하면 주인과 노비 이상의 차이가 난다. 바위위에 앉으면 여러 봉우리들이 빙 둘러 호위하고 있어 귀신처럼 엄숙하다. 서북쪽 촉운봉은 우뚝하고 웅장하게 솟아 있어 기상에 겁을 먹게 되는데 한번 골짜기 속으로 들어가면 세상과 단절이 되니 그윽한 풍취는 또한 좋아할 만하다.

 시내를 따라 서쪽으로 들어가 포회암과 부회암을 지나 6~7리를 가면 구룡연에 이른다. 결국이 짧고 좁아 풍악산 지리곡과 자웅을 겨룰 수는 없다. 그러나 가장 좋은 점은 각 못마다 각각 폭포가 있어 폭포와 못이 서로 이어 층층이 계단을 이루니 모습이 마치 주렴을 꿴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는 겨우 백여 보에 지나지 않지만, 동서로 바위로 되어 있어 좌우에서 흘겨보면 영롱함이 역력히 떨어지는 것 같아 기이한 볼거리는 족히 된다. 아래로부터 세어보면 대게 다섯 개의 폭포인데 높이가 2,30길은 족히 된다. 그 가운데 네 번째 폭포가 가장 오묘하다. 학소라고 불리는 것은 별도의 시내에 있는데 구룡연에서 거리가 수십리에 이르며 바위와 샘은 볼만한 것이 아니라 가지 않았다. 

 이 골짜기의 명승지를 총괄하여 말하자면 식당암 이하는 만폭동과 백연보다 뛰어나지 않고 구룡연은 형체는 갖추었지만 미미하다. 율곡이 품평한 것은 지나치게 미화했다는 것을 면하지 못할 것이며 스님 계현이 이곳이 파관이나 만폭동을 압도한다고 한 것은 그이 지론이 뿌리가 없음을 많이 보여 주는 것이다. 

 경포대 밖 바다와 안의 호수는 조용하면서도 광활한 풍취는 갖춰 천하의 명승지가 될 만한데 어떠한지 알지 못한다. 그곳을 올라가면 스스로 종일토록 돌아갈 것을 잊게 한다. 그러나 반드시 가슴속 기운을 넓게 펼치고 안목을 크게 한 후에야 그 요체를 다 볼 수 있다. 간간이 작은 안목으로 결증하는 자들은 구구하게 물가 사이에서 취색하여 볼만한 것이 없다고 말하는 데 또한 그들이 아는 것이 그만큼 얕다. 

 향호는 시원스럽게 트여 있어 좋아할만 하니 우계가 품평한 것에 부끄럽지 않다. 정각이 있는 곳은 조금 낮고 미미한 것 같다. 문장으로 이것을 비유하자면 경포는 대가가 되고 이곳은 명가 정도이니, 왕유와 맹호연을 이백과 두보에 비유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화암사는 미수파 동쪽 끝에 있는데 흰 산봉우리가 둘러싸고 있으며 아래로 푸른 바다에 닿아 있어 절의 누대에 앉으면 일출을 볼 수 있다. 아래로는 최고 경치의 60-70 정도 되는 천석이 있는데 청절하여 완상할 만하며 물방아가 서로 이어 절을 에워싸고 있다. 남쪽 고개에 성인대가 있는데 커다란 바위가 평탄하여 백여 명이 앉을 수 있다. 

 남쪽으로 천후산에 인사하는 듯 하고, 동쪽으로 영랑과 청초 두 개의 큰 호수를 내려다보니 아득히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아 사람으로 하여금 바지를 걷고 바다를 건널 뜻을 가지게 한다.


『三淵集』



東遊小記 


普門菴在雪岳東側. 自襄陽登岳. 菴據五分之四而高焉. 南對雪岳萬峰負勢競上. 箇箇竦厲. 凜然有不可干之色. 菴前近地. 有香爐臺. 奇巖層積. 坐其上. 指點羣峰. 令人叫絶. 其捴攬衆妙之勢. 與正陽鳳頂略同. 而若論其劍戟圖畵可以驚心動魄. 則彼反有遜焉. 自內山五歲菴. 踰嶺而未及普門六七里許. 行跨嶺脊而東向俯視. 但見其萬劍束鋩. 千戟攢枝. 屹屹直上. 騰騰飛動. 乍遇之. 令人錯愕. 終焉喜忭. 便有朝睹甘夕死之意. 嘗覽海內奇觀. 惟黃山圖似之. 或恐其瑩秀森疎勝此而有未可知矣. 普門菴東臨大海. 可觀日出. 下有萬丈簾瀑. 其爲具勝. 邈不可及. 

食堂泉石. 在普門下流十里地. 而巖泉洒落. 洞府宏暢. 夾以丹崖翠嶺. 而不至襯礙. 雪岳遠峰. 層現於雲靄間者隱隱. 可坐而挹也. 若以諸山泉石通較而定品. 則此爲上乘無疑. 雖如曲淵之十二瀑. 支離谷之九淵. 造化雖巧. 不合於徜徉枕嗽. 自當別論. 惟閉門巖水簾洞. 可相高下. 而猶嫌其過於幽晦. 谷口有數三佳處. 坐地欠妥帖. 石理欠瑩潤. 不無愧色. 外是而萬瀑碧霞潭, 松面僊遊洞, 華陽葩串洞, 尙州甁泉崖, 曦陽白雲臺. 皆不能盡美無疵. 碧霞有激射之快. 而地步苦窄. 僊遊有幽敻之致. 而風韻不足. 葩串以盤石見長. 而大覺板冗. 甁泉以玲瓏爲巧. 而全無映帶. 雖白雲臺上戴碧峰. 下展白石. 差可俯仰. 而猶未具森列停瀉之致. 令人意味易窮焉. 可與食堂等論哉. 自餘瑣瑣. 不足與較. 雖有一二未經眼者. 間有名稱而參互見聞. 槩未有傑然者. 吾東泉石之觀. 蓋止此矣. 

土王城瀑布. 在食堂十餘里許. 巨壁參雲. 瀑流中劈而下. 壁旣展廣. 流不屈曲. 其勢甚壯. 毋論上乘. 寒溪瀑名 殆可與開先爭雄. 若論其高. 則不翅數千丈. 海風江月之句. 惟此瀑當之. 東距滄溟. 不滿二十里. 祈雨時人有溯其頂者. 水源頗豐大. 旱未嘗斷流. 自前往來者. 只從道上泛看. 一番稱壯. 未嘗爲之闡揚. 余停策良久. 細看其北邊對地. 有一土岡. 可以攀上. 若就其顚. 作爲一臺. 則爲嶺東一快觀也. 

靑鶴洞上下十餘里. 窈窕幽敻. 殊不淺野. 大率多兩崖嶄絶. 淵水沉墨. 若巨甕蓄黛. 沸成層湍. 或連亘數百步. 間有展拓宛轉處. 頗可漱弄. 所欠水不澄瑩. 石皆玄黯. 觀音遷以上. 夾溪有圓峰峭壁. 可供眄挹者數三處. 石潭記所謂石門求之邈如也. 食堂巖則廣可布百人食床. 而無奈其石色醜黑. 坐勢欹仄. 鏡潭亦欠圓成. 若比襄陽食堂. 則不翅奴主之別. 坐巖上. 衆峰環衛. 儼若鬼神. 西北矗雲峰. 嶷然雄峙. 氣象可畏. 一入洞中. 若與人世隔絶. 幽致亦可悅也. 沿溪西入. 歷抱回巖負回巖. 行可六七里. 至九龍淵. 觀其結局短窄. 不可與楓岳支離谷爭雄. 而最緊者一淵輒一瀑. 瀑淵相承. 層層成級. 勢若貫珠. 其爲首尾只百餘步. 而東西緣巖. 左右斜睨. 玲瓏歷落. 足爲奇賞也. 自下而數凡五瀑. 高可二三十丈. 而第四瀑最妙. 所謂鶴巢則乃在別澗. 去龍淵幾數十里. 巖泉無可觀. 故不往. 捴論一洞之勝. 則食堂巖以下. 趕不上萬瀑百淵. 而九龍淵則具體而微. 栗谷品題. 恐不免爲溢美. 而契玄 僧名 之欲以此壓倒葩串萬瀑者. 多見其持論不根矣. 

鏡浦臺外海內湖. 具從容闊大之致. 足爲天下勝覽. 不知如何. 而登之. 自令人終日忘歸. 然須廣披襟胸. 大著眼目而後. 可領其要. 間有小眼潔證者. 規規吹索於渚涯之間而謂無足觀. 則亦淺之爲知也. 

香湖瀟洒可愛. 無愧於牛溪題品. 而亭閣所據. 稍似低微. 若以文章爲比. 則鏡浦爲大家. 而此爲名家. 其猶王孟之於李杜乎. 

華巖寺在彌水坡東側. 環擁素嶂. 俯臨滄海. 坐寺樓. 可觀日出. 下有六七分泉石. 淸絶可賞. 水碓相連周繞禪房. 南嶺有聖人臺巨巖平帖. 可坐百餘人. 南挹天吼山. 東俯永郞靑草兩大湖. 縹緲憑虗. 令人有褰裳涉海之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