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문화35호

[향토사료] 4. 양양 남대천(襄陽南大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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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10회 작성일 2024-01-17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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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양양 남대천(襄陽南大川)



조선시대 중종 25년(1530년)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남대천은 부 남쪽 2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남대천(南大川)은 우리나라에서 동해로 유입되는 하천 중에서는 유로(流路)가 가장 길어서 큰 대(大)자를 붙였다. 말 그대로 양양 남대천은 “양양부의 남쪽에 위치한 큰 하천”이란 뜻이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강릉부(江陵府) 오대산에서 나오며 소동나령(所冬羅嶺)의 물과 합치고 부 남쪽을 지나 바다에 들어간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현북면 쪽에서 내려오는 남대천 물과 오색천(五色川)과 구룡령에서 내려오는 후천(後川)의 물이 합쳐진다는 이야기다.9)

예부터 한수와 남대천은 혼용하여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양양 남대천의 또 다른 이름은 한수로 언어학적으로는 大(큰 대) 자의 순 우리말로는 ᄒᆞᆫ이고 천(川)은 물이니, 한수(漢水)10)또는 한천(漢川)이 되었다.

지리적으로는 서울 도심을 흐르는 한강의 발원지도 양양 남대천과 함께 오대산 두로봉 우통수(于筒水)인데11) 서쪽으로 흐르는 줄기는 한강으로 가고 동으로 흐르는 물은 양양 남대천으로 흘러드니, 두 강 모두 우리말로 한수다. 환경부의 한강 대권역『한강 대권역 물환경관리계획』에 의하면 양양 남대천도 한강 권역 속해있다.12)

우통수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 충열왕 7년(1281)에 일연이 펴낸 사서인『삼국유사』에 처음 나타나는데“오대 신앙을 정착시킨 신라의 보천태자가 수정암에서 수도할 때 이 물을 매일 길어다가 문수보살에게 공양했다고 한다.”13)

양양남대천 발원지에 대하여『세종지리지』를 보면 명산(名山)은 오대(五臺)이다.‘부(府) 서쪽에 있다. 봉우리 5개가 고리처럼 벌려 섰는데, 크고 작기가 고른 까닭에 오대산이라 한다. 서대(西臺) 아래 수정암(水精庵) 옆에서 우리샘[檻泉]14)이 솟아나는데, 물의 빛과 맛이 보통 물보다 낫고, 그 무게도 또한 그러하므로 우통수(于筒水)라고 하며, 즉 금강연(金剛淵)은 한강물[漢水]의 근원이 된다’.15)

‘봄·가을에 그 고을 관원으로 하여금 제사 지내게 한다. 한강 물이 비록 여러 곳의 물을 받아 흐르나, 우통수가 중심이 되어 빛과 맛이 변하지 아니해서 중국의 양자강(揚子江)과 같으므로, 한(漢)이란 이름이 이로인(因)하여 되었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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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도에 표기되어있는 于筒水와 漢水之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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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통수 발원지 모습 (자료:강원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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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 수정암 (자료:평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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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新增東國輿地勝覽』山川條: 南大川在府南二里出江陵府五臺山與小冬羅水合流經府南入海

10) 『關東誌』山川條: 南大川은 俗稱漢水云也

11)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ㆍ『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ㆍ『대동지지(大東地志)』등에서는 오대산 서대(西臺)의 우통수를 한강의 발원지로 기록하였다.

12) 『한강 대권역 물환경관리계획』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2019.

13) 『삼국유사』『신동국여지승람』

14) 필비함천(觱沸檻泉)은『시경』의 대아(大雅) 첨앙(瞻卬)편이 나온다. 함천(檻泉)은 바르고 곧게 위로 나오는 샘이다.

15) 「역사ㆍ문화로 본 한강·낙동강ㆍ오십천 발원지고찰」김도현, 2018. 『靑邱圖』漢水之源표기

16) 『世宗實錄地理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