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문화34호

1월 - 양양지역의 황장봉산과 최근 발견된 금표의 실태를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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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78회 작성일 2023-02-06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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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봉산(黃腸封山)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보호(保護)되어 왔는가 ?

황장목(黃腸木)을 함부로 벌채하지 못하도록 금령(禁令)이 내린 산을 황장봉산(黃腸封山) 또는 황장금산(黃腸禁山)이라고 한다. 경세유표(經世遺表) 제14권 총론에 황장(黃腸) 주(註)에 보면 황장이란 황장목의 준말이라 하였는데, 황장목은 소나무의 속고갱이가 황색 부분이었기 때문에 이다. 조선왕실에서 주로 관곽재(棺槨材:왕족이 사망하였을 때 관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목재)와 궁궐 건축에 쓰일 목재를 확보할 목적으로벌목과 개간을 일체 금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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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인방안지도

 

 

신보수교집록(新補受敎輯錄) 형전 금제조(刑典禁制條)에 의하면“봉산(封山)의 큰 소나무를 10주이상 벤 자는 효시(梟示)하고 10주 이하인 경우에는 감사정배(減死定配)한다.”고 했으며“황장봉산의 소나무 1주를 벤 자는 논하여 무겁게 다스렸다.

수교(受敎)에 의하면 곤장 일백에 3년 복역에 처하였다.”하니 황장금표의 입표에는 범법(犯法)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경계의 의미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황장목의 남획에 대해서는 국법으로 지나칠 정도로 엄히 다스렸는데 그 이유는 황장목의 중요성에서 기인되었다고 할 것이다.

비변사인방안지도의 양양 황장봉산 2처는 ‘부연산봉산’과 ‘전림동봉산’이다.

 

조선시대 군국사무를 관장하던 비변사에서 만든 양양부의 비변사 인방 안지도(備邊司印方眼地圖)에 표기되어있는 현북면 법수치리 일원의 부연산 황장봉 산 과 , 서 면 갈천리 일원의 전림동 황장봉산을 표기한 것으로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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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관내 금표현황도

 

 

부연산 봉산은 관아로부터 80리 거리에 위치하며 나무를 베는 것을 금지하는 구역의 둘레는 300리이다. 동쪽으로는 모무동에 이르기까지 60리, 서쪽으로는 면옥치에 이르기까지 60리, 남쪽으로는 강릉 경계에 이르기까지 70리이며, 북쪽으로는 장동에 이르기까지 80리이다.

이와 관련한 것으로 추정되는 입산을 금지하는 암각 금표가 현북면 장리 1개소와 원일전리 1개소, 어성전 1개소, 법수치리 용화사입구에 1개소가 발견되었으나 집중 호우로 인하여 유실되고 마을 개발사업과정에서모두 훼손되거나 매몰되어 지금은 형체를 찾을 수가 없다.

 

반면 서면 갈천리 일원의 전림동 황장봉산은 양양부 관아로부터 100리 거리에 위치하며, 나무를 베는 것을 금지하는 구역의 둘레가 330리이다. 동쪽으로는 영덕에 이르기까지 70리, 서쪽으로는 춘천과 경계를 이루는 지점까지 70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최근에 새로 발견된 금표(禁標)에 대해 알아본다.

지난 6월 8일 양양군 현남면 잰골(상월천리 297번지)에서 발견된 금표는 수해복구 공사 중 토지소유자인 오봉현(남, 57세)이‘禁標’라 쓰인 바위를 발견하고 양양군에 신고하면서 양양문화원으로 알려지게 되자 향토사연구원들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신종원 명예교수, 강원대학교 박봉우 명예교수,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김도현 박사 등 암각문 전문가를 대동하고 금표가 발견된 공사현장에 도착 암각을 답사한 전문가들은 “양양군의 두 곳 봉산 가운데 하나인 부연산(釜淵山) 황장봉산의 금표로 추정 된다”라고 말했다.

 

그 후 동년 10월 25일 강원대학교 박봉우 명예교수로부터 현 홍천군 내면 명개리 산43번지에서 금표가 발견되어 홍천군 박물관으로 이전하였다는 제보를 접했다. 양양향토사 연구원들은 이 소식을 듣고 동년 11월 5일 홍천군박물관을 직접 방문했는데, 암각 문의 내용은“襄陽. 箭林. 黃腸山. 南界百里. 周回三百. 三十里 (양양전림황장산남계백리주회삼백삼십리)”라 각자 되어 전림 황장봉산의 금표임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암각 문에 양양이란 지명이 표기된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이미 각자 된 것을 모르고 지금까지 방치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인식되며, 1973년 이전은 명개리가 양양의 행정 관할 구역이며, 이 지역이 전림동 황장봉산 구역에 포함되어 비교적 각자 내용이 훼손되지 않아 다행이지만, 아쉽다면 금표 각자 바위가 홍천군 박물관에 안치(安置)될 것이 아니라 역사 현장인 명개리 산 43번지에 원형보전 되어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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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전림 황장봉산 금표

 

 

암각 문에 양양이란 지명이 표기된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이미 각자 된 것을 모르고 지금까지 방치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인식되며, 1973년 이전은 명개리가 양양의 행정 관할 구역이며, 이 지역이 전림동 황장봉산 구역에 포함되어 비교적 각자 내용이 훼손되지 않아 다행이지만, 아쉽다면 금표 각자 바위가 홍천군 박물관에 안치(安置)될 것이 아니라 역사 현장인 명개리 산 43번지에 원형보전 되어야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