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오색령

Ⅳ. 襄陽 五色嶺으로 地名復元은 當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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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206회 작성일 2017-03-1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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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를 전후하여 소동라령(所冬羅嶺)이 도로의 기능을 상실하자, 오색령은 새로 개척한 도로상에 위치한 영으로 분명히 소동라령과는 별개의 지명이다. 여지도(輿地圖, 1736-1767)등에는 오색령과 소동라령은 전혀 다른 위치에 표기되어 있다.

북쪽의 오색령은 설악산의 주봉에 가장 가깝다. 이로써 보면 오색령과 소동라령의 거리는 상당히 떨어져 있으며, 소동라령은 오히려 구룡령에 인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설악산의 주봉에 근접한 오색령의 위치로 볼 때 지도상의 오색령은 현재의 한계령임이 분명하다.

반면 한계령이란 명칭이 한 때 동여도에 표기 되었다가 대동여지도에서는 삭제된 지명이었지만 동여도(東輿圖)상에 표기 된 한계령로는 행정구역 개편 전에 양양군 소천면(所川面, 지금은 속초시 지역)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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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령에 대해 조선시대에는 확고한 역사적 전거가 확보되어 재론의 여지가 없었으나, 1915년경 일제가 한반도 침탈을 목적으로 만든 1/50,000의 지도상에 한계령을 표기 한 것을 광복이후에도 고치지 않고 지금까지 지도상에 한계령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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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찾은 자료에 의하면 일제강점기 동안 발행된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인 매일신보에는 양양군 주관으로 오색령 도로를 2등 도로로 만들기 위해 영서 4개 군(춘천, 홍천, 양구, 인제)의 협조 하에 강원도청에 각 군별로 진정서를 제출하였고, 영동의 강릉, 삼척, 울진군에서도 적극 찬성하여 강원도로부터 도로개착을 승낙 받았다는 사실을 매일신보에 대서특필 보도된 바 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이후 1959년도 국무원에서 전국의 지명조사를 실시하였다. 당시 인제군 북면에서 보고 된 조사서식을 보면 지도상 기재된 지명, 경·위도, 좌표, 지명유래 순으로 기록토록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인제군에서는 지도상에 한계령이 표기되어 있어 보고 할 수 있었으나 양양군 오색령은 지도상에 누락되어 보고할 수 없었다.

이상을 종합 할 때 소동라령과 오색령은 별개의 위치에 있었다는 것과, 일제 강점기에 오색령 명칭이 한계령으로 변경 되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따라서 지명은 옛 문화를 간직한 인문학적 유산임을 감안 할 때, 역사적으로 고증된 자료를 토대로 잘못 기록된 것을 바로잡아서 후손들에 물려주는 작업은 타당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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