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정비화

(1) 기초생활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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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285회 작성일 2016-03-28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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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초생활보장


육군 제1군단사령부에서는‘일면 작전, 일면 건설’이란 구호아래 주민생활 안정을위해 공병부대에서는국유지에집터를마련해주고경계측량과집터공 사지원을했다. 또건축용재료확보는 대부분 전쟁전에 벌채한 나무들이며 제재소를 직접 설치하여 목재를 마련해 주었다. 반면 주택건축용 나무는 허가 없이도 벌채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 이웃끼리 합심하여 주택을 건축하면서 함 께살았다고증언했다.41)
피난길에서 돌아온 주민들은 식량이 없었다. 피란민에게는 한 달에 2회씩 배급하는데 마을의 구장이 면사무소를 방문 구호양곡을 수령하여 대상자에게 배급하였다. 구호대상자에 지급한 양곡은 총9,887세대에 30,956명분인데 지급비율은강현면이30.3%, 죽왕면이64.2%였다.
반면 구호품은 주로 안남미와 밀가루, 분유 등이다. 쌀의 경우 2가마니를 70여 가구에 배급 하 니식량이늘부족하였다.
42)따라서 부족한 식량은 산과 들에 나는 산나물, 쑥, 질경이를 케어 허기를 면하였고, 해안가 어부들은 해초류 등을 채취하여 식량대용으로 끼니를 해결한 사례도 있었다.43)
정말로 초근목피로 식량을 대신하는 궁핍한 생활이었다. 의복, 식료품, 농기구 비료 등 생활 용품이 너무도 많이 부족했다.
이때 군단사령부에서는 유엔군 사령부 내의 한국민사원조처 (KCAC)와 긴밀한 연락을 취하여 구호식량과 물품을 도입하고 요구호대상자에
게지급함으로써일시적생계에보탬이되었다. 구호물품은군, 면민정관이강릉동해사령부에서수령하여온것을읍면에서는각마을이장을통해구호대상자에게나누어주었는데주민들대다수가요구호대상자였다.
시장(市場)을 개설하여 부족한 생필품을 구입 및 판매할 수 있게 하였는데 5 일장으로 매 장날이면 각지에서 장꾼들이 몰려들어 시장이 활성화 되었다. 반면속초지역의상거래는1953년도에현중앙동에2개동(棟)의현대식상가건물 이신축되면서활발한상권이형성되기시작했다. 화폐는대한민국에서1953년2월25일교환한지폐를사용하였다.44)
기개설운영되는시장의실태를살펴보면농·어촌에서직접생산한농수산물은 말할 것도 없고 몰래 빼돌린 군수물자들이 상품으로 나왔다. 심지어 빈민 구호로나온식량을비롯한각종생필품, 의약품, 자재등도빼돌려시장에상품으로나오는실정이었다.45)
이와같이양양군, 특히속초가군사전략적거점으로부상하면서급격하게군부대가주둔하게되자이에따른군인, 군속, 민간인들이많이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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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양곡 배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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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시장 장터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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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이상준(남, 84세, 강현면 주청리), 면담(2015. 8)
42) 『수복연감』(강원문화연구사, 양양군청, 1954. 6)
43) 이철수(남, 73세, 강현면 전진1리), 면담(2015. 9)
44) 김귀옥『경제와 사회 여름호』잃어버린 또 하나의 역사 (한국전쟁시기 강원도 양양군미군정 통치와 반성) 서울대사회발전연구소, 2000. p. 재인용
45) 김귀옥『, 경제와 사회 여름호』잃어버린 또 하나의 역사 (한국전쟁시기 강원도 양양군미군정 통치와 반성) 서울대사회발전연구소, 2000. p.이동호의 증언 재인용